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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3일 내게 맞는 옷세상 (Life)/길 (Trail) 2020. 9. 24. 08:29
디트로이트 교회에서 시니어 그룹인 '상록회'를 섬기면서 나는 어르신들에게 목사 부인 이외에 '고문', '기쁨조', '비서', '선생님' 등등 여러가지 직책이 많았었다. 그렇게 늘 어르신들을 섬기다 보니 내가 어르신에게 섬김을 받는 다는건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오늘 그 하지 못했던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아침 일찍 75세 권사님이 함께 꽃동산엘 가서 걷자고 하시면서 혹시 내가 모를까봐 자세한 안내를 해주신다. 꽃동산 자체는 무료이지만 주차비를 내야하고, 멤버는 신청을 하면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바코드를 받아 입장 할 수 있기에, 멤버인 당신이 주차 바코드를 받아놨으니 나를 데리러 오신단다. 나도 멤버십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어긋날까봐선지 굳이 우리집으로 오신단다. 이곳으로 이주한지 몇개월도 안된 때에 팬데믹으로 지난 7개월동안 제한된 삶을 사는 내가 아직 적응이 안 됐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그 분의 자존감을 세워드리기 위해 오늘 나는 연로하신 권사님의 베품을 받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꽃동산에 도착해서 가을꽃으로 교체되는 모습을 즐겼다. 직원들이 기존에 피었던 여름꽃들을 뽑아내고 다양한 색깔의 소국과 또 다른 가을 꽃들로 옷을 입히고 있었다. 소국은 이제 막 심어선지 꽃들은 피지 않아 푸르른 빛이었지만 주변의 꽃들이 가을 꽃동산을 대신해줬다. 새로운 꽃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음과 카메라속에 담아왔다.
많이 걷기도 했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어 권사님은 페디오를 열어 운영하는 이태리식당(Di Pescara) 에서 파스타를 먹자고 하신다. 당신이 좋아하는 식당이고 당신이 먹어본 파스타중 제일 맛있었다고, 나에게도 그 맛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으셨던게다. 스파게티는 권사님 말씀대로 정말 맛있었다. 맛에 대해 말이 필요 없는 듯 난 파스타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백화점 입구에 있는 식당이어서 우린 점심을 먹고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 들어가 미처 못 나눈 이야기를 하며 상점을 기웃거리며 한바퀴 돌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일부러 우회를 해서 우리 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작은 한국가게도 소개해주시며 당신이 자주 가시는 곳이라며 급할땐 멀리 가지말고 그곳에서 장을 보라는 팁까지 주셨다.
나는 오늘 하루 잠깐 타인의 옷을 입었다. 늘 다른 사람을 섬기는 직분을 가진 내가 그것도 어르신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 권사님께서 나를 픽업해서 꽃동산 나들이를 하고 함께한 식사까지, 모두 당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을 나에게 베풀어 주시면서 나눔의 기쁨이 있었겠구나...싶은 깨달음이 있었다. "오늘 제 마음과 육신을 따뜻하게 해주신 권사님 감사합니다!"
다시 입게 될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불편했던 옷이 편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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