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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6월 26일 스토리가 있는 호수(텃세)
    세상 (Life)/길 (Trail) 2020. 6. 28. 05:19

    하루 종일 홍수주의보까지 내린 비가 내린다. 누렇게 마른 잔디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고 베란다의 텃밭도 오늘은 물 대신 비다. 해질 무렵 갑자기 비가 그치고 반짝 해가 나면서 무지개가 뜬다.

    밖으로 나서니 비가 온 후여선지 기온마저 선선해 호숫가로 발길을 옮겼는데 정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멀리서 보고 최소한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안쪽으로 다른 호수로 이주했던 거위가족, 늘 숨어 지내던 청둥오리 가족, 그리고 백조 가족이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기도 했지만 산책길을 따라 가까이 가보니 백조는 갑자기 나타난 거위가족을 경계하느라 대치중이었고, 청둥오리는 나를 보자마자 호숫가로 뛰어들었다. 새끼 백조들만 어미의 보호아래 평안히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한국사람이 은근 많이 사는 서브인 건 알았지만 한 한국 아저씨가 밴치에 앉아 통화 중이었다. 백조 곁을 지나면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바로 옆 건물 3층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뭐라고 소리를 친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좋은 소리는 아닌 듯했다. 두 바퀴를 돌고 마지막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가려했는데 아까 위에서 소리 지르던 할아버지가 내 곁으로 와서 내가 백조 곁에 너무 가까이 갔다고 타이르신다. 산책 길로만 다녔다고 했더니 그럼 백조 없는 윗 길에서 걸으라며 볼맨 소리를 하신다. 빈정이 상해 되돌아서 집으로 왔다. 

    오늘 저녁은 여기서 취침하려는 듯~
    미안하게 청둥오리는 잠자리를 만들다가 나때문에 입수 ㅜㅜ
    앉아있던 거위가족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빠 백조는 날개를 드러내며 긴장한다. 

    할아버지의 심기를 더 이상 불편하게 하기 싫어 가던 길을 되돌려 석양을 바라보며 집에와서 남편에게 일렀더니 나보고 다시는 거기 가지 말라고 한다. 뭐~그렇게까지 기분 나쁜 거 아닌데... 싶다가 백조가 거위를 쫓아내듯이 이 할아버지도 내게 텃세를 하시나? 하긴 이 경치를 즐기기 위해 HOA를 많이 내야 하니 그만큼의 오기도 부릴만하다. 게다가 잠자는 시간에 가서 횡패를 부린듯해서 자중하려 한다. 

    백조의 호수에는 조류의 흑백 갈등, 권리로의 텃세 그리고 인간의 심술까지 다양한 장르가 흐른다. 석양이 멋있어서 다 용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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