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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접시의 사랑~세상 (Life)/일상 (Happiness) 2014. 5. 5. 22:08
오늘은 우리의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밉네 곱네 하면서 벌써 30년을 살았다.
나도 남편도 party animal 이 아니어서 카드 한장 서로 나누지 않고 보통의 날의 하나로 덤덤하게 지내는데, 울 교회 한 장로님가정이 (우리보다 10여년은 더 연세가 많으신) 우리의 결혼 기념일을 해마다 챙겨주신다.
몸둘바를 모르게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It's a matter of taste' 라는 호숫가에 있는 이름이 긴 식당에서 축하를 해 주신다 하시니 호사를 누릴 예정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100% 일수 없는 일이 있다.
한달전 실종됐던 울 교회 집사님 딸이 이틀 전 뉴욕 허드슨 강 위로 이틀전 사체로 떠 올랐다.
그 딸 아이는 정말 똑똑하고 예쁜 아이였다.
유난히도 말재주가 많아서 치대 공부시작전엔 뉴욕에서 코메디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단다.
그렇게 뉴욕 콜럼비아 대학에서 치과의사가 되기위한 꿈을 키웠고,
힘든 공부를 다 마치고 이번 달에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달전에 유서를 남겨놓고 실종됐다.
핸드폰 추적이 학교 근처인 조지 워싱톤 다리에서 끊어졌고,
실종 당일 식구들에게 죽고싶다는 전화를 했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던 딸 아이는 자주 그런 말을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가족들은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집사님댁엔 딸아이보다 5살 어린 아들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아이도 역시 똑똑해서 예일대학을 거쳐 콜럼비아대학 의대를 다니고 있는 수재다.
둘은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하며 지냈고 사이가 각별했다고 한다.
서로가 부모의 다른 점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난히도 똑똑한 부모 밑에서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음에 틀림이 없다.
경찰은 강에서 건져낸 사체를 부검하기 전에 동생에게 확인을 요청했고, 그 아인 누나의 사체를 확인하면서 얼굴은 물에 부어서 못 알아보겠지만 치아가 누나임에 틀림이 없다고 했단다.
그 딸아이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남친과 헤어진 후 자살시도도 했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 아이를 죽음에 이를 만큼 힘들게 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아침에 일어나 이멜을 체크하는데 이름도 모르는 분이게서 이런 멜이 들어왔다.
아마 지난 번 아이패드강의를 받은 상록회 어르신 중에 한분일것이다.
"사과 좀 깎아주세요!"
암(癌)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때였다.
새벽 다섯 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 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 입원 중인 남자 환자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놀란 마음에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를 내밀며 말했다.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 맥이 풀렸다.
옆에선 그의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 좀 깎아 줘요."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어 나는 사과를 깎았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다.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다.
그러자 예쁘게 좀 깎아 달란다.
할일도 많은데 별난 요구하는 환자가 못마땅해
못들은 척하고 사과를 대충 잘라 주었다.
나는 사과 모양새가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그를 뒤로 하고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며칠 뒤, 그는 상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사실 며칠전 새벽에 사과 깎아 주셨을 때 저 깨어 있었어요.
그날 아침,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내밀더라구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 깎아 줄 수가 없었어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간호사님이 바쁜 거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정말 고마워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그 새벽,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녀가 눈물흘리는 내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것으로 충분했노라고....
-오장환 제공-
오늘 아침 난 남편에게 사과 한 접시를 깍아서 선물하며 허그를 했다.
'Happy Anniversity' 라고 말하면서~
(참고로 남편은 사과 한개가 아침식사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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