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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꽃잎세상 (Life)/일상 (Happiness) 2020. 5. 28. 00:33
나는 네 자매 중 막내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나의 어린 시절엔 늘 엄마 같은 큰언니가 있었다.
그 곁엔 큰 언니의 친구 같은 2살 아래 둘째 언니가 있었다.
두 언니가 언니들만의 둥지로 떠난 후에 내 곁엔 친구 같은 세째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들을 오랜 해외 타향살이로 일 년에 한 번 뵈면 행운이다.
요즘처럼 집콕하면서 나는 아침 일찍, 한국은 저녁 늦은 시간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큰언니가 우울해하신다.
완치받았던 혈액암이 다시 수치가 나타나서 아마 두 주후에 다시 치료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신단다.
80 평생을 라면 한번 끓여보지 않더니 이제는 몸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도 않으시는 형부와
철 모르고 시작했다 헤어짐으로 마무리된 결혼생활 후 두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막내아들과
아기새처럼 할머니를 바라보는 이제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손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중이신데...
요즘 식구들이 모두 집안에 있지만 여전히 집안일은 80이 다 돼가는 큰언니 몫이다.
설거지 같은 가벼운 가사를 나누고 몸을 좀 사리라고 했지만 깔끔한 울 언니 성격에 그건 힘든 가 보다.
하루 종일 삼시세끼 밥하고 집안일하면 몸이 서너 개라도 부족하다고 짜증이 나신단다.
그래서 딸 같은 막내가 제안을 했다.
언니에게 동네 책방에 가서 이기호의 <웬만해서 아무렇지도 않다> 제목의 책을 한 권 사셔서,
집 아닌 장소 (커피숍이든 산책로 벤치든)에 가셔서,
40개의 짧은 소설로 쓰인 책에서 하루에 한 편씩 꼼꼼히 읽어 보시라고 했다.
그리고 큰언니가 그 스토리를 요약해서 저녁에 '네 자매 북카페'에서 내용과 감상을 함께 나누자고 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했던 형식을 따라쟁이를 해보자고 했다.
언니는 책 제목이 맘에 들으셨는지 흔쾌히 허락하셨고 오늘째 4일째다.
성경 이외의 책은 잘 안 읽으시고 그나마 눈도 잘 안 보이셔서 무게 있는 책은 힘들겠지만 짧은 소설이어서 가능한듯하다.
첫 번째 제목이 '벚꽃 흩날리는 이유'인데 사랑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어서 다른 언니들도 일상을 내려놓고 사춘기 소녀들 마냥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에 다들 작가라도 되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짧은 소설 속 남의 삶을 통해 일탈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40... 좋은 숫자인데 끝까지 잘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날 아침 난 산책길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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