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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 순례기 전체요약여행 (Travel)/이스라엘 (Israel) 2010. 3. 26. 06:25
디트로이트 한인연합장로교회 제자학교를 마친 예수님의 제자들 41명이 2010년 3월 9일부터10일동안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위해 디트로이트를 출발했습니다.
이틀 후 아주 이른 새벽에 우리 일행은 이스라엘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곳에 미리 도착한 8분을 만났습니다. 하룻 밤을 머문 텔아비브(Tel Aviv) 호텔에서 지중해 해변을 바라보며 풍성한 과일과 야채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신약시대 피장이 시몬이 살던 욥바(Jaffa-항구도시)의 방문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욥바를 떠나 고대 이집트와 연결되었던, 신약성경에는 안디바드라 (Antipatris)라는이름으로 기록된 아벡(Aphak)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갈때 당시의 고대 로마 도로였던 카르도(Cardo)도 걸었습니다.
아벡을 떠나 구약에는 기록이 없는 가이사랴(Caesarea)에 도착했습니다. 샤론평야의 모래로만 이루어진 지중해 해안지역에 헤롯1세 당시 가장 발달된 로마의 건축양식으로 만든 현대화된 도시이며,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의 수도였으며 가장 로마식으로 건설된 도시입니다.
저희 일행은 갈릴리호숫가의 호텔에 3일동안을 머물면서 주변도시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팔복기념교회였습니다. 이스라엘엔 여러 종류의 기념교회가 수 없이 많이 있지만, 저희들의이번 여행은 성서지리를 공부하신 이주섭목사님의 안내로 성경의 현장을 학습하는 여행이기에 일반 관광객들이 찾는 기념 장소보다는 성경의지명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래도 팔복기념교회는 어떤 곳인가 들렀습니다. 그리곤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 들린자를 고치신거 라사(Gergesa)를 거쳐, 어부의 집이라는 뜻인 빌립과베드로, 그리고 안드레의 고향인 벳새다(Bethsaida)에 올라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곳으로 여기는 언덕과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의 삶의 터전을 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2의 고향 가버나움(Capernaum)은 갈릴리 북쪽 해안에 있는데 큰 회당도 있었으며 주민들이 많았던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많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또 회당에서 설교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중풍병으로 누운종을 낫게 하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으며 혈우증을 앓는 여인을 낫게 하셨습니다. 가버나움처럼 예수님을 거부해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던 고라신(Korazim) 회당에 올라 갔는데 주변에 큰회당과 정결례용 물구덩이가 마을주변에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로 내려가 배를 타고 예수님과 어부였던 제자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말로 된 찬양이 흘러 나오면서 선장이 어부 베드로의 모습을 재연해 주어 좋은 기억으로 담아왔습니다. 갈릴리 호수 끝자락에 위치한 요단강에는 세례 기념장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말 성경구절(막1장9절-11절)이 쓰여 있습니다. 실제로 해마다 교파를 초월해 40여만명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갈릴리호수의 동쪽 경계를 이루며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시리아로 부터 점령한 골란고원(Golan Plateau)을 올라갔습니다. 한국의 대관령을 올라 가듯 구비구비 올라가다 보니 아직도 전쟁이 있었던 자리에 남아 있는 지뢰가 있다는 싸인이 군데군데붙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바산 또는그술이라고도 불리는 곳인 골란고원에 올라보니 어떻게 이렇게 높은 지역에 이다지도 넓은 경작지가 있는지 가는 곳곳마다 찬양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주후 66-73년 제1차유대인 항쟁이나 주후 135년 제2차 유대인 항쟁인 바르코크바 반란때에 로마에 격렬히 저항했던 격전지중의 한 곳인 감라(Gamla)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이스라엘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회당이 있었습니다. 감라를 뒤로하고 헐몬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풍부한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로 올라 갔는데 헤롯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이름과 아들빌립의이름을 따라 생겨난 곳입니다. 이곳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곳이기도 합니다. 헤롯이 건설한 헬라의우상 ’팬(Pan)’의 신전 유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후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왕이 ‘단(Tel Dan)’에 남유다의 르호보암왕 (예루살렘)에게 향하는백성들의 민심을 돌리고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게 했던 곳 입니다. 이스라엘 북쪽 경계에 있는 성읍으로 보통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를 이스라엘 전역으로 지칭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무를 자를 만났던 성문을 지났는데 그곳에서 보아스가그 보다 우선 순위가 있던자에게서 룻의 기업을 넘겨 받았습니다.
해질 무렵 가나안 성읍중 가장 큰성읍이고 가나안땅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아주 중요한 성읍인 하솔(Hazor)에 올라 갔습니다. 꽤를 내어 나무 패며 물긷는자가 된 기브온 거민 히위사람외에는 모두 멸하였던곳인데 그곳에는 지하 40미터까지 파내려간 수원지도 있었으며 올리브 오일을 짜는 기계도 발견되었으며 주변은 넓은평야로 옥토였으며 때를 따라 핀 노란 겨자꽃은 사진을 찍고 싶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사렛(Nazareth)을 방문하여 그곳에 세워진 기념교회 앞뜰에서 예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고, 한국천주교회에서 보내온 기념성화가 벽에 걸려 있는 걸 보고 모두들 반가와 했습니다.
나사렛을 떠나 북쪽으로 갈릴리 남쪽으로 사마리아를구분하는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인 므깃도(Megiddo)에서 저희들이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함께 동행하셨던 이건호목사님께서 말씀을전해주셨고, 예배를 마친 후 므깃도 성읍을 돌아보고 수원지를 통해 연결된 지하터널을 거쳐 반대편에 있는 통로로 나가 우리를 위해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를 선별했던 하롯샘(Harod)과 블레셋사람에게 패한 사울과 그의 세아들이 죽은 길보아산(Mt. Gilboa)을 지나 벧산(Bethshan)으로 옮겼습니다. 데가볼리의 수도이며 대표도시였던 벧산은 주전 749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던 도시인데 발견된 이후 지금도 여전히 발굴중이었는데 지진으로 넘어졌던 성전기둥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사람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사울과 세아들의 시신을 이곳 성벽에 못박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때 첫번째 관문인 여리고(Jerico)에도 착했지만 너무 늦어 입구에서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기생 라합이 살던 성읍이었던 여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성읍으로 알려진 구약시대의 유적지로 고온건조한 지역인데 팔래스틴의 대표적인 곳입니다.
여리고에서 하룻밤을 자고 엣센파 공동체가 생활하던 곳인 쿰란(Qumran)에 도착했습니다. 1947년에 한 배두인양치기에 의해 사해사본이 발견되면서 유명해졌으며 그후 900여 편의 성경과 관련 자료가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성경사본의 역사는 주전 1세기까지 성경을 연구하는 가장 가치있는 유물입니다. 광야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우리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반드시 뜬다는 사해(Dead Sea)에 몸을 던졌습니다. 바닥에 깔린 새까만 진흙으로 온몸과 얼굴까지 마사지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해 했습니다. 사해는 지구 표면에서 가장 낮은지대로 해수면보다 420미터 더 낮습니다. 비가 골짜기를 통해 유입되지만 사해에서 빠져나가는 출구가 없는이유로 소금함유는 30%가 넘지만 일부 미생물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그 성분으로 피부질환을 치료하기도 한답니다. 왼쪽엔 사해 오른쪽은 황량한 광야를 지나 한참 만에 우리는 마사다(Masada)에 도착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열심당원인 시키리(Sicarii)들이 마지막까지 로마에 저항했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한 960명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곳인데, 죽지않고 살아남은두여인과 다섯명의 아이들에 의해 역사가요세프스에 의해 전해졌고 유대전쟁사에 기록되어 후대에 알려졌습니다. 시키리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사본, 기록된문서, 헤롯궁에서 옮겨온 돌을 사용하여 건축된 유대회당은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었으며 마사다에서 내려다 본곳엔 마사다를 함락시키기 위해 로마병정들이 쌓은 군막사, 방어벽, 공격을 위한 흔적들도 남아있습니다.
예루살렘(Jerusalam)에 작은 소요가 있어서 들어가지 못해 발길을 돌려 예수님의 가족이 예루살렘을 떠나 나사렛으로 돌아던 중 하루가 지난 후 예수님이 동행하지 않음을 발견하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 광야에 갔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고 또 광야를 내려다보며 주님의 놀라우신 솜씨를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는예루살렘에 다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주요 골짜기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남유다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라기스(Lachish)를 올라가 보았고, 다윗이 물맷돌 다섯개로 골리앗과 싸운 엘라(Elah)골짜기에서 다윗처럼 물맷돌을 하나씩 들고“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라고소리쳤습니다. 블레셋에게 빼았겼던 여호와의 궤를 돌려받은 벧세메스(Beth-Shmeth)언덕에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소렉(Sorek)골짜기에 위치한 종유석동굴을 구경하고 예루살렘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감람산(Mt. Olive)에 올라 예루살렘 성읍을 바라보며 감격에 젖어있는데 한쪽에서 총성이 들렸고 이어 버스 한대가 화염에 불타올랐습니다. 어제 일어났던 소요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모두들 예루살렘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하며 감람산에서 내려왔고, 다행히 오후에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있었고, 통곡의 벽과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고난의 길도 올라갔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무덤에서 부활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떠나는 날 오전엔 예수님께서 기도 하셨던 게세마네(Gethsemane)동산에 올라 석관들과 기념교회도 방문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 서쪽에는 헤롯성전의 외벽의 일부로 주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될때 남아있는 통곡의벽이 있었습니다. 그후 유대인들은 이곳에 와서 자신들을 위해, 또 이스라엘의 성전의 회복을 위해 통곡하는 곳이 되었는데 유대인의 최고의 기도 장소이며 남녀가 구별되어 기도합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남자는 반드시 모자나 키파를 써야 하는데 없으면 입구에서 빌려서 써야 합니다. 성벽의 돌틈에는 꽂아놓은 기도문들로 빈틈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마지막날 아침에 아쉬움으로 창문밖을 내다 보는데 하나님께서 언약의 무지개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슬 촉촉한 창문밖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훌륭한가이드 이주섭목사님, 우리목사님 그리고 여러지역에서 함께 동행하셨던 목사님들, 특히 사진작가이신 목사님까지 계셔서,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잡기 위한 일행 모두의 열정이 이번 이스라엘 여행을 은혜롭게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신 교우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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